송대수(2020-04-20 10:27:04, Hit : 52, Vote : 0
 http://blog.daum.net/ds1472
 성묘

    성묘
                                                                        
   / 송대수

망종이 지난 길목, 길섶의 초목이 하루가 다르게 우거지며 연둣빛 푸름이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햇볕을 듬뿍 머금은 바람이 살랑살랑 땀 맺힌 살결에 스친다. 이때쯤이면 보리 베기와 모내기로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사일이 바쁜 시기로, 수확과 파종을 끝냄으로써 새 곡식과 초목이 대지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해마다 나는 이즈음 산소에 가곤 하였다. 매번 여기를 오를 땐 늘 머리가 무겁고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오늘은 더욱 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산 길로 접어들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미끄러운 길을 신경 쓰며 조심해서 천천히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내뿜는 숨소리만이 적막한 숲속 나뭇잎 사이로 퍼져가고 있었다.
‘쉬익’ 소리와 함께 바람을 일으키며 무언가 머리에 스친다. 쭈뼛 머리카락이 솟는다.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나뭇가지 하나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뱀이라도 매달려 있는가 싶어 섬뜩하기도 했다. 신경을 곤두새운 채 발을 옮기려는데 또다시 쉬익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일면서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그때서야 새가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다닌 익숙한 길이건만 오늘은 유독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산소에 도착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4~5미터 떨어진 활엽수 우듬지에서 노란 새 한 마리가 ‘째-액’ 외마디 소리와 함께 곧장 내게 달려들어 머리를 치듯이 스치고 되돌아간다. 그리고는 나무에 앉아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목이 찢어질 듯 소리를 내지른다.
땀이 식고도 한참을 머뭇대다 산소에 향을 피운다.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10년 동안 전신 마비되어 의사표시 한번 못한 채 투병하다가 금년 1월 초 이곳에 묻히셨다. 절을 올린다. 두 손을 모으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자 흙냄새가 확 뿜어져 나온다. 아! 이 흙냄새, 어머니가 흙 향기로 나를 맞아주시는구나. 손등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으니 초상 때도 의연한 척 버티느라 감추었던 울음이 울컥 솟구친다. 눈물이 손등을 타고 흐른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이 떠오르고 어머니가 새 이불을 대침으로 꿰매는 모습이 보인다. 큰 방에서는 아버지가 화롯불에 모여 앉은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우리 형제들은 다른 방에서 난로에 손을 비벼대며 갖은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어머니가 내게 다가오신다. 갑자기 날카롭게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엎드려 있던 내 등을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간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다. 또 그 새다.
산소에 앉아 새가 있는 맞은 편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샛노란 발광체가 곧 터져 피라도 흘릴 것 같은 말간 선홍색 부리를 쩍쩍 벌리며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호통을 쳐댄다. 가늘고 연약한 다리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움켜쥐고 당차게 고함을 치고 있는 아름다운 노란 새는 나를 꾸짖으며 산에서 쫓아내려는 것 같다. 서로의 긴장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우듬지 나뭇가지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새둥지를 보았다.

어머니는 생전에 워낙 고운 모습에 목소리 또한 맑아서 아름다운 꾀꼬리가 되신 걸까? 산소에 둥지를 틀고 나를, 아니 우리를 기다리셨던 걸까? 둥지의 어린 새들을 보호하려 저렇게 애쓰는 어미 새가 마치 어린 우리 형제들을 위해 밤낮으로 몸을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 같아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대학교 들어갔을 무렵 어머니는 편지 한 통을 받고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을 앓아 누우셨던 적이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무슨 연유인지 몇 달이나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해방 후 희망에 부풀어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먹고 사는 문제도 큰일이었지만 전쟁을 겪고 엄혹한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진 사회는 편지 왕래조차 어렵게 했었기에 어머니는 속이 타서 재가 되도록 그리움을 억누르고 감추며 살아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 만나볼 날을 기대하며 살아왔는데 외할머니 마지막 가는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져 내렸던 것이리라. 당신의 어머니를 보낸 그 심정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머니는 그러고도 이십여 년이 더 지나서야 동생과 함께 일본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짧은 일정으로 외할머니 산소엔 들리지 못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어머니는 초조해 하며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꼭 산소를 찾아봐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한 터라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이명이 들린다 하면서 가끔씩 뜬금없는 말을 하실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루를 지내신 다음 날, 출근을 서두르는 아내를 못 알아보는 일이 생기고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어머니는 외숙부 가족들과 함께 오사카 근교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어머니는 어린 시절 오사카에서 백화점을 처음 가보았던 일, 그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소녀가 된 듯 들떠서 외숙부와 끊임없이 옛날이야기를 주고 받으셨다. 어머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며 괜히 콧등이 시큰해졌었다.
일본의 산소는 한국과 달리 봉분을 석물로 쌓아올려 비석을 세우고 무덤 사이 통로는 자갈을 깔아놓아 풀 한포기 없었다. 함께 온 사촌이 물을 담은 양동이와 수건을 들고 오자 석물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수건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았다. 차가운 석물에서 당신의 어머니의 온기라도 느끼시려는 듯 물을 적신 수건으로 석물과 비석을 오래도록 정성껏 닦았다. 이렇게 준비를 한 후 예를 드렸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성묘가 되었다. 일본에 다녀오신 얼마 후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고 이제는 영영 내 곁을 떠나셨다.

둥지를 한쪽에 숨겨두고 멀리 앉아 나에게 달려들며 새끼를 지키려 소리치던 어미 새가 힘들어 자꾸 주저앉으려는 나를 책망하는 것 같다. 가슴이 옥죄어 오면서 안절부절 불편하다. 어머니 산소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라던가? 그즈음 산에 접해 사는 형님 댁을 방문하니 형수가 아내에게 “어쩌면 좋아? 우리 어머니, 새로 환생하셨나봐.” 한다. 십여 일 베란다에 새가 매일 찾아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날아간다는 것이다. 노란색에 붉은 부리를 가진 새였을까?

  <한국문학시대> 2020 봄호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

이전게시판 (2000.4~2004.1) 보기

이전 게시판(1999.11~2000.3)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