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수(2020-04-20 10:30:20, Hit : 56,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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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


      묵주
                                                                        
     / 송대수

5단 묵주 기도를 세 번째 반복할 무렵 열차는 대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골고다로 향하는 십자가만큼이나 무겁게 눈꺼풀은 내 몸을 휘감으며 내려앉는다. 묵주를 잡은 손끝에 힘이 빠지고 까무룩 정신은 아득해져간다.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 용서하시고 ……’
기도문이 자꾸만 건너뛰고 순서가 헝클어진다. 정신을 차려 다시 시작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외는 반복 기도가 몽롱한 졸음 속으로 깊이 빠져 들게 한다. 대전에 도착할 때까지 나머지 2번을 마저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뒤가 뒤섞이지 않으려 버텨가며 다시 암송하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서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부산에서 돌아올 때 KTX 열차를 타지 않고 시간이 좀 걸리는 새마을 열차를 탄 것은 묵주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다니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늘 품고 다니던 묵주다.

뭣도 모르고 시작한 첫 사업에 실패하면서 먼저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되었다. 그다음 파산한다는 것은 물질적으로만 망가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존심이 처참히 무너지고 가라앉았던 갈등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드러나며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갔다. 겨우 추스르고 새로 사업을 시작하여 그럭저럭 꾸려가다가 IMF 사태 즈음에 또다시 사업을 접었다. 첫 사업이 실패한 이후 나에게 몸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업마저 접고 나서는 그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었으며, 때때로 말 할 때도 성대가 떨려 말하기조차 어려웠고, 남들 앞에 서있을 때는 몸이 흔들거리는 민망한 내 모습에 스스로 당황하는 일이 잦아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엇을 하려 집중할 때는 혼자 있을 때조차도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난독증도 생겼던지 TV 자막도 읽어내지 못했다. 나는 말을 잃어갔고 자신감도 없어지면서 주변에 내 초라한 모습을 감추려 집안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형제들 간의 묵은 갈등이 심해졌고, 쉽게 상처 받고 삭이지 못한 앙금은 쌓여가면서 나는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마저 피하게 되고, 그나마 조금의 위안을 얻었던 교회에서도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어도 마음이 풀리거나 안정되지 않았다. 신앙심 자체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교회 행사나 신자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뒤틀린 마음이나 부정적인 태도를 감추어둔 채로 고해성사를 하거나 하느님께 간구하는 내 자신이 허위와 위선에 차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더해지면서 더욱 힘들어져 갔다. 사회관계를 거의 끊다시피 하고 교회도 멀리하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오랜 시간을 혼자만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최근 3년이 넘도록 새벽에 홀로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지 그간 불편했던 심정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고 많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좀 가벼워져서일까 소원해졌던 사람들과도 다시 연락을 하게 되고 전보다 진솔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톨릭에 귀의할 때 세례명을 지어주었던 수사신부가 부산의 성 베네딕트 수녀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머뭇거리며 만나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찾아 볼 용기가 생겼다. 내가 무엇을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었던가. 무언가 잡으려 쫓아다녔지만 나를 억누르는 것은 무거운 짐뿐, 결국은 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 등. 가만히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고해성사도 하고 조용한 성당의 한쪽에서 묵주기도와 묵상을 하고 싶어졌다.

대전에서 내리던 눈은 영동을 지나자 비로 바뀌면서 하얀 풍경이 얼룩진 세계로 바뀌었다. 세상사에 얼룩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만, 작은 일에도 깊이 상처받는 여린 마음과 하루에도 수없이 뒤집히는 변덕으로 얼룩졌을 나의 마음도 이 겨울비에 씻겨가길 바라며 차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산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한결 차분해 보였다.
광안리 수녀원에 도착하자 신부가 정문 어귀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신부와 함께 성당에서 낮 예배를 보며 묵주기도를 드리고 사제관에서 식사를 하였다. 소소한 일상사와 친구들의 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전히 속마음을 터놓기가 쉽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용기를 내어, 냉담한지 오래되었으며 그간 짓누르던 무거운 삶으로 신앙을 부정하기도 했었다고 고해를 하였다.
신부는 만남을 정리하며 말했다.
“교회에 한동안 나가지 않았다 해서 신자가 아니라 할 수 없어. 헤쳐가야 할 세상일들을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럼으로써 하나하나 새롭게 태어나는 것, 그것이 부활이야.”
평생을 기도하며 수도생활을 해온 수사신부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꿰뚫었다.
승화, 깊은 의미까지는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는 일은 늘 고통과 기쁨이 따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승화시켜 새롭게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신부의 배웅을 받으며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겨울비 내리는 수녀원 앞으로 뿌연 비안개가 뒤덮여 있다.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 광안리 바다가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 신앙심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 깨달아 가는 것이리라. 수사신부와 함께 깊고 넓은 바다같이 탁 트인 시선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듯 착각에 빠진다.

김천쯤이었을까 옆자리에 부스럭거리며 정장을 입은 여성이 앉는다. 아마도 일상을 바쁘게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워킹맘인 듯싶었다. 먼 길을 통근하는지 지쳐 보였지만 가정으로 돌아가는 행복감에 젖은 그녀의 속삭이듯 나직한 통화 소리가 내 귀로 빨려 들어온다. 묵주 알을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는다. 집을 향해 달리는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자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번지며 하늘이 환해진다. 저물어가는 저녁 빛에도 세상이 여느 때보다 또렷하고 평화롭게 다가온다.

  <창작산맥> 202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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